일어로... 같이썼다는부분에서 의의를 두어봄.... 어느쪽이든 후진건 매 한가지라 할말은 없다
“사막에 떨어졌을 때, 멀리서 오아시스가 보이더라구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건 그냥 신기루였어.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요, 이 시간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와 같다고.”
가바나는 가끔 덤덤한 말투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 때는 항상 나를 사랑스러워서 어찌 할 도리가 없다는 듯한 눈빛을, 손짓을, 행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꼭 이런 상황에서만 그런 얘기를 하더라. 가바나는 그 말에 항상 후후, 하고 작게 웃을 뿐이었다.
내가 그의 감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가바나는 모르겠지만, 아니, 알고 있지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내가 깨어있다는 것을 몰랐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까.
어쨌든 그 날은 가바나가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아 먼저 잠에 들까, 하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모르는 사이에 선잠이 들었던걸까, 끼이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어스름한 빛에도 눈이 부셔서 가늘게 눈을 뜨니 가바나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자고 있다고 생각해서, 였던걸까. 내게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아선 안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모른 척 눈을 감고 뒤척이는 척을 했다. 그리곤 조금 후회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그냥 어서오라고 이야기나 해줄걸.
눈을 꾹 감고 있으니, 가바나가 다가와 침대 옆에 풀썩 앉아 머리를 매트리스에 처박듯이 푹 고개를 숙이는 것이 느껴졌다.
색색거리는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흐르는 것 같지도 않고, 흐느끼는 소리같은 것도 들리지는 않았지만 어째선지, 그냥, 그런.
그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간단하게 씻고 있는 모양인지 세면대의 물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또 방금처럼 침대 옆에 풀썩 앉아서 이번에는 빤히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냐면, 눈을 감고 있어도 뚫어질 것처럼 쳐다보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젖은 손이 내 손에 닿았다. 그리고 깍지를 꼈다. 가늘게 뜬 눈으로 본 가바나의 얼굴은 쓸쓸하게 웃고 있었다.
한참을 또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손의 물기가 전부 날아갈 때 까지도 가바나는 가만 앉아서 나를 쳐다보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참을 내 손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조금 지친 날이었어요.”
후, 하고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꼭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요, 나도, 당신도... 금방 깨어버릴 것 같은 꿈이라서 불안해요, 항상.”
이 불안이 지금 내게는 가장 큰 축복이에요. 그는 말을 마치곤 깍지 낀 손을 풀어냈다.
“미안해요.”
사과의 말을 건네는 목소리엔 평소처럼 차분하고 따뜻한, 엷은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하고싶던 말이 끝난건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거실로 나가는 가바나의 등이 보였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방으로 맛있는 음식 냄새가 새어들어왔다. 어제 그렇게 늦게 들어왔는데도 용케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어정어정 방 밖으로 나오니, 부엌에서 가바나가 뭔가를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좋은아침...”
“아, 오모치씨! 일어났나요?”
“으응...”
나는 눈을 부비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떼며 운을띄웠다.
“그러고보니까 가바나, 어제는 몇 시에 들어왔어?”
“아- 좀 늦게 들어왔어요. 자고 있길래 깨울까봐 거실에서 잤어요.”
“아아, 그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완성되니까요~”
“으-응”
식탁에 앉아 요리를 하고 있는 가바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평소의 가바나였다. 밤에 보았던 그 쓸쓸해 보이던 모습은 꿈이었던 걸까, 착각이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말하고싶어졌다.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있잖아, 가바나.”
“네?”
“사랑해.”
“헤?”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본 가바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왜? 하는 눈빛을 마주 보내며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 해줬다.
“아하하, 으-응, 저도에요.”
“...배고프니까 빨리.”
“네~에”
막상 말하고 나니 조금 머쓱한 기분이 들어서 그대로 식탁에 엎드려 버렸다. 가바나가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는 것이 들렸다.
어째서 네가 지금 이 순간을 불안해하는 것인지, 그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나는 알 수 없다.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겠지. 기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래도 나의 존재가, 나의 말 한마디가 네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